산티아고 순례길 천사와 악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 나의 천사와 악마를 만날 수 있다. 태초에 하느님이 천지창조를 하셨을 때 천사도 생겨나고, 악마도 생겨났을 것인데, 우리는 누가 천사이고, 악마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우리가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으면서 경험해 볼 수 있다. 악마도 천사나 우리와 같이 하느님의 자녀이며, 다만 아픈 손가락이 아닐 뿐이다.


산티아고 순례길 천사와 악마

길 잃은 나를 구하는 천사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코스는 무려 800킬로미터를 걸어야 하는 길이고, 여기에는 수많은 교차로와 샛길이 있지만, 모든 곳에 순례길 표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복잡한 도시를 지나가는 경우에는 길을 잃어버리기 일수이다. 게다가,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새벽에 도심을 지나가게 되면, 어디선가 한 번씩은 내가 바른 길을 걷고 있는지 고민을 하는 순간이 생긴다. 같이 길을 걷는 순례자가 있으면 물어볼 수 있으나, 그러한 순간이 오면 아이러니하게 다같이 헤매고 있는 경우가 많다.

부르고스는 순례길 중간 큰 도시 중 하나인데, 이곳은 순례길 표시를 조금 독특하게 만들어 놓았다. 디자인에 굉장히 신경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정작 노란 화살표와 조개 껍데기 표지석을 따라온 순례객들에게는 이 표시들이 순례길을 가르치는 표시라고 생각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다.

동이 트기 전 여러 순례객들이 한명 한명 알베르게를 떠나게 되는데, 뒷 사람은 앞 사람이 가는 길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된다. 얼마를 가서 거리에 불빛이 희미해지고, 여러 갈림길이 나오는 곳에서 길을 찾지 못하는 경우, 생각없이 앞 사람의 뒤를 따라 오는 순례객 또한 같이 멈춰 설 수 밖에 없다. 같이 어느 길로 가야할 지를 고민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서너명이 일곱여덟명이 되어 같이 서 있는다.

특이한 브루고스의 산티아고 순례길 표지
특이한 부르고스의 산티아고 순례길 표지, 저 상의 걷는 방향으로 걸어야 한다.

이러한 순간 어디선가 자전거를 타고 청년이 하나 나타나서는 손으로 한쪽 길을 가르키며 스페인어로 “저기저기”하면 외쳐주고, 우리의 알았다는 사인을 보내면, 흔쾌히 다시 사라진다. 관리해야 하는 순례객들이 많은 듯 보였다. 많은 선택의 순간에 지켜보고 있던, 수호 천사가 연민을 가지고,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느낌을 갖게 된다. 순례길을 걷다보면 이러한 경험은 한두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선택의 순간 동네 청년이 자전거를 타고 와서 알려주고, 장바구니를 가지고 지나가는 아줌마가 갑자기 나타나 “이 길이 아니고 저길로 가야해!” 하고 알려준다. 또한, 어느 순간에는 순례자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순례길을 걷다보면 많은 순례객들이 비슷한 일정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기 때문에 서로 얼굴이 익는 경우가 많은데, 갑자기 낯선 순례자가 나타나 길을 알려주고, 홀연히 사라진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나에게 바른 길을 알려준 천사들의 특징은 같이 있으되 나서지 않으며, 도와주되 절제를 하고, 알려주되 말이 통하지 않는다. 갑자기 나타나 방향만 살짝 알려주고 사라진다.


전능한 악마의 유혹

나가 만난 산티아고 순례길 악마가 진정 악마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악마가 있다면 이러한 사람이 악마가 아닐까 미루어 생각할 뿐이다. 악마는 사람을 따라 다니는데, 자신이 좋아 하는 사람을 따라 다닌다. 사람들의 결정에 주저함을 만든다. 또한, 악마는 굉장히 똑똑해서, 순례길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하며, 영어, 불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등 많은 언어를 구사하면서 각국의 사람들을 구슬려서 자신의 뜻을 따르게 한다. 자신의 하고자 하는 일을 설득하는데, 모든 사람이 그의 말을 따르게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위 유혹에 능하다.

새벽 순례길을 출발할 때서 부터 다음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하루 종일 이야기를 한다. 쉴새 없이 수다를 떨며 같이 가는 순례객들의 에너지를 흡수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악마가 하는 말에 반응을 하지 않으면, 앞이나 뒤에 다른 순례자 그룹으로 이동을 하여 다시 했던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시 하면서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이 악마를 처음 보는 사람은 굉장히 신선해 하지만, 두번 세번 계속 보게 되면 같이 길을 걷는 것을 힘들어 하게 된다.

그는 순례자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 저녁에는 순례자들과 함께 성당에 가서 순례지 축복을 받기도 한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서 악마라 생각할 수 어렵다. 그러나, 악마 역시 하느님의 자식이니, 성당에서 미사를 보는 것이 이상하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나는 나의 주관을 가지고 나의 길을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사아군에서 이 친구를 처음 만났고, 산티아고를 지나 피스테라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게 되었다. 이 사람을 피해보려 일정을 바꿔보기도 했지만, 결국은 피스테라에서까지 만났다. 피스테라까지 가면서 내 주변의 친구들은 다 바뀌었는데, 이 친구만은 바뀌지 않은 듯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천사와 악마는 굉장히 주관적인 기준에 의해서 나누어 질 수 밖에 없다. 순례길을 걷기 전에는 이러한 기준이 모호했다. 단지, 좋고 나쁨의 문제였다. 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난 뒤, 천사와 악마에 대한 기준과 유혹에 대한 기준이 생긴 것 같다. 다시 사회로 돌아가서도 이러한 천사와 악마는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반은 천사, 반은 악마인 동상
천사와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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